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02. 태조, 정종실록 (휴머니스트 2005.04)

1392년 공양왕 3년 7월 17일 이성계가 드디어 새 왕으로 추대되었다. 한반도에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었다. 이성계가 왕으로 올랐지만 그는 지도자로서의 실력 훌륭했을지 몰라도, 정치가로서의 능력은 약간은 부족했기에 개국 이후의 조선은 정도전이 이끌어 나가는 듯 하다. 그렇게 자기 뜻대로 나라를 만들기 위해 고려를 버리고 역성혁명을 택한 그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군대를 이끌고 역성혁명을 할 때의 이성계는 멋있었으나 왕으로서의 모습은 약간 실망이다. 부인의 등쌀에 못 이겨 세자를 두 번째 부인의 아들로 정한 것은 너무 어이없는 행동이었다. 첫번째, 두번째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너무나 어리고 조선을 세우는데 특별한 공도 없고, 왕에 대한 준비도 없는 왕자였기 때문이다.
이성계는 막상 왕이 되고는 7년 밖에 왕좌에 있지를 못 했다. 생각보다 짧은 기간이다. 그리고 1차 왕자의 난 이후로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은 왕은 며칠 뒤 세자 영왕군 방과에게 자리를 물려 주고 물러난다. 권력이 무엇인지, 이방원은 그렇게 정도전 등의 아버지가 이루어 놓은 사람들을 죽이고서라도 왕이 되었어야 하는지 아쉽다. 그리고 실록에 따르면 정도전은 죽기 전에 이방원에게 비굴하게 빌었다고 하지만, 태조실록은 태종에 이르러 하륜이 책임자가 되어 쓰여졌다고 한다. 정도전을 보고 이성계과 협력하여 힘을 기른 것처럼 자신도 이방원과 협력해서 힘을 길렀지만, 정도전을 싫어해서였는지 나쁘게 썼을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태조의 정책 중에 마음에 안 드는 것 중에 하나가 공신제도이다. 공신제도의 취지는 좋으나, 그 상인 토지와 노비가 세습이 된다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되었다. 공신은 계속 생겨나기 마련인데, 토지가 계속 세습이 된다면 언젠가는 문제가 터지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차라리 조선 초기부터 공신은 본인에 한해서만 과전(땅에 대한 세금을 받는 권리)을 줬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방원은 왕자의 난을 일으켰지만, 자신이 왕이 되지는 않았다, 위의 3명의 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둘째형(첫째는 예전에 죽었다.)을 추대하고는 자신은 조정을 장악해갔다. 하지만 서자 밖에 없었던 정종이었기에 넷째 방간 역시 왕의 자리에 욕심을 낸다. 하지만 그 계획이 알려져 오히려 방원에게 당하고 지방에서 살게 된다. 3남인 방의는 일찍이 권력에 욕심을 버리고 살아가기에 정종은 방원을 세자로 책봉하고 2년 2개월 만에 물러나고 태종의 시대가 온다.

태조 시대에서 아쉬는 것은 역성혁명을 해서 많이 달라진 것을 못 느끼겠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그 시대를 직접 살아보지 않고 평가하기에 한계점이 있지만 말이다. 그래도 좀 더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하는데, 공신들에게 땅을 주고 권력을 주면서 세습하도록 한다면 그들이 고려 말의 권문세족처럼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는가? 그냥 당분간은 나아졌으니 그것으로 만족해야 한다는 것인가? 아무튼 어려운 문제다. 그리고 고려왕조실록도 읽어봐야겠다. 책으로 된 건 재미가 없던데….흠..

      취미이야기/책, 만화  |  2008. 10. 15.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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