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01. 개국 (휴머니스트 2005.04)

세계의 문화 유산이라는 조선왕조실록, 총 1893권 888책, 한글로 번역할 경우 320쪽짜리 책 413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의 국보 151호이자, UN의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선정한 세계적인 유물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체계적이고 실시간으로 당대의 기록이 정리된 예는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그러한 조선왕조실록은 한겨례신문사의 기자였던 박시백 작가가 만화로 재구성하였다. 실록의 내용을 토대로 작가의 시각으로 새로 그렸지만, 조선왕조실록의 내용은 읽을 때마다 화가 나기 짝이 없다. 도대체 백성을 위한 정치, 백성을 위한 토론은 많이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권력, 그리고 무리를 나눈 당파싸움 등의 짜증나는 이야기가 많이 보일 뿐이다. 그리고 야사에 알려진 것과 다른 내용도 꽤 있다. 예를 들면 황희정승 같은 경우 훌륭한 재상이었을지는 모르나 청렴 결백하지는 않았고, 요절한 문종도 병약한 모습의 왕은 아니었던 것이다.

조선은 태조 이성계로부터 시작하지만, 박시백 작가의 조선왕조실록은 태조 이전의 개국편부터 존재한다. 아마 이성계의 성장과 역성 혁명이 일어나게 된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싶어서 그러지 않았을까? 물론 조선왕조실록에 모든 이야기가 다 실렸을 수도 있지만. 그러다 보니 고려의 마지막 몇 명 왕도 등장하는데, 그 중 공민왕과 공양왕도 등장하는데 꽤 인상적이다.
공민왕은 어릴 적에 원나라로 볼모로 잡혀가서 원나라로부터의 신임을 얻은 후 왕으로 등극한다. 하지만 공민왕은 원나라 자기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을 거라는 예상을 뒤집고 권문세족을 숙청하고 고려개혁을 단행한다. 그러다 가장 의지하고 믿었던 부인인 왕비가 죽는 바람에 그 의지가 약간은 사그라들지만 계속하여 개혁의 의지를 잊지 않고 무명의 신돈을 등용하여 개혁을 해나간다. 그러다 신돈은 자신의 성공에 취하여 있는 도중, 신돈 때문에 약간의 힘을 잃은 권문세족과 신돈 때문에 성장한 신진 사대부에 의해 숙청당하고 만다. 분명 신돈이 시작할 당시에 다른 사람의 모함으로부터 자신을 믿어줄 수 있냐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책에서도 그랬지만 공민왕의 작품이었을 가능성도 농후해 보였다. 그렇게 사라진 공민왕의 개혁 의지는 공민왕이 아주 다른 왕이 되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그 후 힘 없이 내려온 우왕과 창왕 이후 공양왕은 45세에 떠밀려 왕이 된다. 이성계파가 장악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뒤집고는 공양왕은 왕으로서의 역할을 의외로 노련하게 잘 수행한다. 그렇게 공양왕이 해낼 수 있었던 것은 정몽주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그렇게 노련하게 고려를 유지해가던 공양왕이었지만, 정몽주가 이방원에게 살해 당한 이후로는 힘쓸 수 없이 자리를 내주고는 만다.
고려말의 대학자였던 정몽주. 도덕적이라고 많이 알려져 있었지만, 나라를 위해서라 꼭 도덕적인 일만 한 것 같지는 않았다. 우왕, 창왕을 폐위하는데도 동참를 했고, 이성계파의 큰 세력인 정도전을 제거하려고도 하였다. 그 행동들이 모두 고려를 위해서였다. 박시백 작가의 해석에 따르면 정몽주는 ‘고려를 위해서’ 정치를 하는 것 같았다. 굳이 역성혁명을 하지 않고도 고려가 잘 될 수 있는데, 왜 그래야 하는지, 고려를 위해서 왕도 폐위 시켰는데.. 아무튼 어이없는 죽음을 당한 정몽주 이후 마땅히 고려의 버팀목이 없어 무너지고 말았다.

이렇게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01 개국편으로 시작하였다. 공민왕과 신돈의 개혁이 잘 이루어지다가 초심을 유지 못 하고 무너진 것이 너무 안타깝다. 권문세족의 횡포에 흔들리던 나라를 개혁은 잘 시작했는데 말이다. 그리고 정몽주의 한 순간의 판단이 그렇게 다른 결과를 낳을 줄이야. 그렇게 조선은 세워졌다. (뭐, 꼭 내가 고려의 편인 것 같지만, 잘은 모르겠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

      취미이야기/책, 만화  |  2008. 10. 14. 08:28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1. 광해군일기 (휴머니스트)

훈련소에서 어느 중대장님의 추천으로 읽어본 책, 그 분 말씀으로는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광해군의 국제 정세를 파악하는 것을 정확하게 파악했다고 생각된다면서..

조선왕조실록 - 광해군일기. 과연 그는 어떤 왕이었을까? 흔히 종/조로 끝나지 않고, 군으로 끝나는 왕은 폭군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파악을 하게 된다. 조선왕조실록1권부터 읽었으면 정치체제나 행정체제, 직급 같은 것을 좀 더 수월하게 알 수 있었을 것인데, 약간은 아쉬운 생각이 든다.

아무튼 광해군은 선조와 공빈 김씨 사이에서 태어난 둘째 아들이었다. 정비인 의인왕후는 아이를 낳지 못 했다고 한다. 그리고 광해군이 세 살이던 해, (그의 형 임해군은 네 살) 공빈 김씨는 숨을 거둔다. 하지만 인빈 김씨를 만나면서 임해군과 광해군은 부왕의 관심권에서 멀어졌다. 그렇게 어머니없이,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 한 채 광해군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청소년기를 임진왜란으로 보내게 된 광해군은 도망치려는 아버지이자 왕인 선조와는 달리 분조(나눠진 조정)를 이끌고 활동을 했다. 이렇게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것이 그가 왕이 되었을 때의 행동의 원인이 되었던 것 같다.

어렵사리 왕이 된 광해군은 자신의 자리에 대해 불안해서인지 옥사를 자주 치르게(옳은 표현인가?) 되는데, 너무 아쉽다. 옥사보다는 좀 더 나라를 위해서 정치를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흔히 말하는 친구를 잘 못 만난 것일까? 그가 이이첨을 가까이 하지 않고, 이원익, 이항복, 이덕형을 가까이 하였으면 그도 현군이 될 수도 있었고, 조선도 발전했을 텐데 말이다. 전쟁을 경험하면서 분조를 이끌었던 경험 때문인지 신하들이 모두 반대하는 친명배금 정책을 홀로 반대하고 중립을 지키자고 한 것. 그 당시로써는 잘못된 판단이었을지 몰라도 돌이켜 보면 옳은 판단이었다. 명나라는 분명히 지고 있었고, 청나라는 뜨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제 정세를 잘 판단했던 만큼 사람에 대해서도 조금만 더 신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왕이다.

조선왕조실록 1권부터 안 봐서 그런지, 조선왕조실록11- 광해군 일기에 의한 조선의 조정은 정말 짜증난다. 백성을 위해 조정하는 토론은 거의 없다. 맨날 모함하고, 아부하고, 비방하고, 나쁜 일을 도모하고. 백성들이 잘 살게 하려는 토론은 못 봤다. 자기를 밀어주는 사람, 자신의 친인척을 등용하고, 권력을 이용하여 남을 짓밟고 자기 배 채우고. 뭐, 특이한 이야기만 책에 옮기고, 남을 도와주는 등의 그런 아름다운 이야기는 그 당시 너무 흔한 일이어서 책에 쓰기가 민망해서 그랬겠지라고 생각해 본다.

옥사로 사작했지만, 나중에는 그 옥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실각한 광해군. 높은 자리에서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게 되는 광해군.

곧 1권부터 순서대로 읽어봐야겠다. 조선의 역사에 대해 고등학교 때 배우기는 했지만, 교과서랑다른 이야기, 느낌이 있어서 흥미가 간다. 만화로 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러하기에 오히려 편하게 읽을 수 있지 않나 싶다. 전에 삼국사기나 고려왕조실록을 글자로 가득 채운 책은 읽기 힘들어서 다 못 읽었던 기억이 나기 때문이다. 흥미위주의 책을 좋아해서 그럴수도 있지만 말이다.

역사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TV에서 조선 시대 사극을 즐겨 보는 이에게는 그 시대적 배경을 알 수 있게 되어 좋다. 마지막으로 국사를 공부하는 학생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취미이야기/책, 만화  |  2008. 10. 10.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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