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와이즈 베리 출판, 마이클 샌델, 2012.04)

곧 한국시리즈가 시작됩니다.. 그 때마다 항상 흔히 불리우는 암표가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디아블로 3 한정판을 파는데 많은 사람들이 구매하려고 했었고, 선착순이어서 구매 후 가격이 올라가는 일도 있었습니다. 과연 암표나 그런 한정판을 사기 위해 줄서기를 통해 돈을 버는 행위가 잘못된 것일까요? 시간 많은, 그리고 야구에 전혀 관심이 없어 표가 필요 없는 사람이 미리 표를 선점해서 시간이 없는 사람들에게 자기 시간을 써서 표를 구해서 시간이 없는 사람, 또는 표가 필요한 사람에게 자기가 판다는 것이 문제인 것인가요? 아니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것일까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30년간을 살아왔지만,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런 나에게 그런 생각을 하게 해준 마이클 샌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What money can't buy)"은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 왔습니다. 가격을 지불하고 새치기하는 방법으로는 라인스탠더 고용, 입장권 암표 구매 등의 예를 들면서, 줄을 서서 순서대로 권리를 얻는 줄서기의 도덕을, 빨리 서비스를 받으려고 가격을 지불하는 시장의 도덕으로 대체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현상들이 결코 옳은 현상들은 아니면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회적 재화, 도덕적 가치를 평가하는데 있어서 다 같이 토의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생각지도 못 했던 벌금과 요금의 차이.  책을 인용하면,


벌금과 요금의 차이는 무엇일까? 둘의 차이를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벌금은 도덕적으로 승인 받지 못하는 행동에 대한 비용인 데 비해, 요금은 도덕적 판단이 배제된 단순한 가격일 뿐이다. 쓰레기 투기로 벌금을 부과 받았다면 쓰레기를 버리는 행위는 잘못이라는 뜻입니다. 그랜드캐니언에 맥주 캔을 버리면 단순히 청소 비용만 지불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우리가 사회구성원으로서 자제해야 하는 나쁜 행동임을 의미한다.
그랜드캐니언에 쓰레기를 버릴 때 부과되는 벌금이 100달러이고, 어떤 부자 등산객이 빈깡통을 계속 들고 공원 밖으로 나가는 수고를 아낀 대가로 그 정도 비용은 낼만 하다고 생각했다고 가정하자. 그는 벌금을 요금으로 생각해서 맥주 캔을 그랜드캐니언에 던져버린다. 그 부자가 돈을 냈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가 잘못된 행동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랜드캐니언을 값비싼 쓰레기통으로 취급함으로써 그랜드캐니언의 가치를 적절한 방식으로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애인 전용 주차공간을 예로 들어보자. 시간에 쫓기기는 하지만 신체가 멀쩡한 사업가가 자신이 일하는 건물 가까이에 주차하고 싶어 한다. 자신의 편의를 위해 장애인 전용 주차공간에 차를 세우는 대가로 다소 비싼 벌금을 기꺼이 낼 용의가 있다. 그는 벌금이 자신이 비즈니스를 하는 데 따르는 비용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비록 그가 벌금을 내더라도 우리는 그가 잘못 행동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는 벌금을 단순히 비싼 주차비 정도로 취급한 것이다. 하지만 사업가의 이러한 태도에는 도덕적 중요성이 빠져 있다. 그는 벌금을 요금으로 취급함으로써 장애인의 형편을 존중하지 않고, 일정 주차공간을 할애하여 장애인을 배려ㅎ련ㄴ 지역사회의 노력을 무시한 것이다.


벌금과 요금. 둘 다 똑같이 어떤 행위를 함에 따라 댓가를 치르는 점에서는 굉장히 비슷하지만 그 이면에 가진 뜻은 굉장히 다릅니다. 벌금은 마이클 샌델이 언급한 것처럼, 댓가에다가 도덕적으로 승인받지 못한, 또는 우리가 사회적으로 정한 약속을 어긴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살아오면서 이런 것을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해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심화되면, 가벼이는 쓰레기를 버리는 행위가 나중에는 커져서 폭력 사건에 까지 벌금을 내면 되지 라는 도덕적 해이가 일어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벌금은 결코 댓가로만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용납되지 않아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외에도 선물의 현금화, 또는 상품권화라는 요즘의 현상에 대해서도 마이클 샌델은 별로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두 사람이 선물을 주고 받을 때, 자기 돈 주고 자기 선물 자기가 고르는 게 좋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만, 이 책을 읽고 조금은 바뀌게 되었습니다. 책을 인용하면

선물의 자중손실에 관심이 있는 경제할자들 눈에 이러한 제2의 시장은 선물 받는 사람이 현금 대신 상품권을 받으면서 입게 되는 손실을 수량화한다. 할인율이 높을수록 상품권이 지난 가치와 현금이 지난 가치의 차이는 커진다. 물론 상품권이든 현금이든 전통적인 선물 교환이 표현하는 사려깊음과 관심을 담지는 못한다. 이러한 미덕은 선물 형태가 상품권으로, 마지막에는 현금으로 이동하면서 퇴색된다.

상품권이나 현금은, 선물을 주고 받음으로써 상대방에 대한 관심을 포함하지는 못 한다는 표현을 하는데, 저 역시 이런 생각을 깊게 해 본 적은 없습니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약간은 지루해서 끝까지 못 읽었는데, 이 책은 현 상황의 실례를 많이 들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도덕적 가치, 사회적 약속을 계속해서 상기시켜주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추석이 다가옴에 따라, 차례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정의 되어 있는 차례는, '추석에 사당에서 사대조(四代祖)의 조상에게 지내는 예(禮). 추석제사, 추석다례, 추석차사, 중추차례, 중추다례라고도 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차례가 가지고 있는 전통적인 의미는 '조상에게 지내는 예'라고 생각합니다. 조선시대만 해도, 몇몇 계층을 제외하고는 평소에 잘 먹는 사람보다 못 먹는 사람이 더 많았을 것이며, 그리하여 명절날이라도 잘 먹자고 차례를 지내면서 음식을 많이 하고, (물론 예전에는 이것보다 많이 못 했을것이라 생각합니다.) 대가족이 모여서 차례지낸 후 다 같이 식사를 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현재에도 이렇게 전통이라며 예전의 차례상을 그대로 지내는 게 맞을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고, 지금도 집에서 차례상을 좀 현대식으로 바꾸자고 주장합니다. 차례상에 치킨, 피자를 올리면 어떻겠냐고 하고 말입니다. 차례가 가지고 있는 전통적인 의미인 '조상에 대한 예'를 가지고 있으면 되지 않을까요? 꼭 치킨, 피자가 아니더라고, 돈 주고 사서 차린 차례상(요즘은 차례상 채로 팔더군요.)보다는 집에서 정성 들여서 한, 그리고 다 같이 먹을 수 있는 닭 백숙,갈비탕 같은 것을 차례상에 올리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취미이야기/책, 만화  |  2012. 9. 26.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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