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9년 전(1998년)의 별똥별쇼를 기억하시나요??
고등학교로 돌아가고 싶다 - 내 고등학교 가장 아름다운 추억.
(블로그는 부제를, 홈페이지는 원제목을 썼습니다.)

2007년 12월 15일 하늘에서 유성이 굉장히 많이 떨어진다는 기사가 떴다. 사람들도 많이 기대하고 많이 보러 간다고 한다. 유성에 관한 10년 정도 된 추억이 떠올랐다. 나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의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9년 거슬러 올라가 1998년,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이야기이다. 그 때는 지금처럼 핸드폰도 디카도 없었다. 몇몇 어른들이야 가지고 있었겠지만 많이 보급되지 않았던 때였다. 그게 10년도 안 된 과거의 이야기이다. 사진으로 남기지 못해서 아쉽지만, 머릿속에 얼핏 남아있는 기억이 가끔씩은 더 아련하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느껴질 때도 있지 않는가 하고 위로해 본다. 아쉽게도 날짜는 기억하지 못 한다. (검색해보니 11월 18일이라고 나온다.) 날짜를 기억하지 못 하는 이유는 날짜 보다는 ‘그 날’을 뚜렷하게 기억하기 때문이다. 바로 199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전날 밤, 당일 새벽이었던 것이다.

약 1주일 전부터 ‘60년에 한 번 있을 유성 쇼’라고 신문에 기사가 났고, 우리 고등학교 천체 관찰 동아리 ‘스페이스 오딧세이’에서 독서실 게시판에 그 기사를 붙여 놓았다. 3초에 유성이 1개씩 떨어진단다. 3초에 1개, 1분에 20개, 1시간에 120개가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시골에 있는 학교라서 주위에 불빛이 없어 하늘도 더욱 잘 보인다.

하지만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교에서 새벽에 그렇게 떼를 지어 별을 보러 가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기 마련인데, 때마침 그 다음날이 고3 선배님들의 수능날이였다. 이건 말 그대로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이야기. 그리하여 수능 전날 1,2학년들 강당으로 모아 놓고 ‘교장선생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당부하였다. 별똥보다 3년 동안 고생한 고3선배님들이 더 중요하지 않겠냐면서. 그리하여 우리의 별똥별쇼 관람을 물을 건너하나 했다. 밤 10시쯤 되자 12시까지 하던 자율학습이 10시에 끝이 난다고 하였다. 모두 조용히 일찍 자라는 의미였다.

그러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새벽에 깨서 밖에 나가면 그 깨는 동안 시끄러우니 아예 밤을 새버리면 되지 않느냐’는 말도 안 되는 논리! 그렇게 한 두명씩 이야기가 나오더니 결국은 꽤 많이 나가버리는 사태가 일어나게 되었다. 나도 친구들이랑 갈까말까 고민을 0.3초간 하고 나왔다. ‘60년에 한 번 있을 유성 쇼’라는 것 때문에. 계산을 해보면 내가 77살에 다시 볼 수 있는데, 그 때까지 살 수 있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었다.

예전부터 수능날은 입시한파로 유명했기에 옷을 3~4겹 껴입고 단단히 준비하여 나갔다. 새벽 3~4시쯤 절정이라고 했기에 시간이 많이 남았다. 설명을 돕기 위해 간단하게 지도를 그렸다. 우리 학교 주위의 약도인데, (이 그림을 보고, ‘어~ 우리학교네~’라고 할 사람도 있을지도 모르겠지만..X주시 X진리에 있는 학교입니다. ^^) 우선 10시 반에 나왔으니, 학교에서 작은 가게를 들러서 간단하게 요기를 했다. 가게까지는 10~15분이 걸린다. 그리고 또 시간이 남아서 노래방에 갔다. 우리 학교 학생 밖에 없었다. -_-;; 열심히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이 근방에서 술 마시고 계시던 우리 학교 선생님께 딱 걸린 것이다. 3학년 학생 주임샘께서 내일 1년동안 같이 한 학생들이 시험을 치느라 나름 긴장했는지, 혼자서(였던가?) 술을 마시고 계시다가 어디서 많이 본 학생들이 많기에 딱 알아보시고는 노래방있는 3거리에서 놀던 학생들 다 걸린 것이다. 큰 일 났다. 별똥별 쇼는 별똥별 쇼대로 놓치고, 선생님께 걸려서 혼까지 나게 생겼다. 이 때 12시 반쯤, 모두가 일렬로 줄을 지어 학교로 돌아가던 도중 뒤에서 누군가가 “어!” 이런다. 돌아가던 학생들 대부분 돌아봤다. 모두가 약속한 듯이 “우와~” 감탄사를 내질렀다. 말 그대로 밤 하늘 반을 가로지르는 멋진 별똥별이 떨어졌던 것이었다. 돌아가면서 마음이 바뀌었다. 기왕 걸린 거 별똥별 쇼를 보고 혼나자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돌아가다가 나랑 친구2, 3명(으로 기억한다.)은 다시 나왔다. 작은 가게와 학교 사이에 있는 도로에서 돌아가다가 작은 가게에 차가 한 대 서 있고, 어른이 학생을 뭐라 하는 것 같았다. 얼핏 보기에 또 선생님이 우리 학교 학생들 보고 들어가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 어른이 차를 타고 오기에 우리 3명은 밭으로 내려가서 도로가에 기대서 몸을 숨겼다. 다행히 못 보고 지나갔다. 그리고 새벽 3~4시까지 시간을 보내야 했기에 사람이 많다던 교회로 갔다. 그 당시 핸드폰도 없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서로 연락이 잘 됐는지 모르겠다. 흐흐. 역시나! 교회에 우리 학교 사람들이 많았다. 교회에서도 사람들이 여
기저기 뭉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하늘을 보고 있었다.

교회에서 1시까지 있다가 1시 조금 넘어서 다시 작은 가게로 가서 끼니를 때웠다. 라면을 먹었는데, 라면을 먹는데 밖에서 “와~” 하는 탄성 소리가 많이 들렸다. 별똥별 쇼가 시작되는 것 같았다. 나는 새벽 3~4시에 실컷 볼텐데, 굳이 지금 볼 것 있냐며 계속 라면을 먹는데 집중했다.

그리하여 2시쯤 이웃 학교로 갔다. 거기는 운동장에 잔디도 있었다. 역시나! 우리 학교 학생들이 많았다. 춥지만 잔디밭에 누워서 별똥별 쇼를 기다리고 있었다. 슬슬 더 추워지기 시작했다. 우리 1학년 학생도 많았고, 2학년 선배님들도 많았다. 사람이 많아서 모여 있었는데, 대부분 같은 반 학생들끼리 머리를 가운데 모으고 둥글게 누워 있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누워있으니 하늘도 잘 보이고 좋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추워졌고, 별똥별도 많이 떨어졌다. 4~5분에 1개씩은 떨어졌던 것 같다. 3~4시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3시가 되었다. 3시쯤부터는 굉장히 추워졌다. 오리털 파카 다 소용없었다. 별똥별 수가 늘어날 기미가 안 보인다. 친구 1명이 들어갔다. 춥고 잠 오고 힘들어서 들어가겠다고. 나도 힘들어서 들어가고 싶었지만, 밤새 있었던 것이 아까워서 계속 기다렸다. 하지만 별똥이 늘어날 기미가 안 보인다. 결국 나도 3시40분쯤 들어와 4시 쯤 잤다.


내 고등학교 생활, 가장 아름답고 즐거웠던 추억이라고 생각한다. 글솜씨가 부족하여 잘 나타내지는 못 하였지만, 다 같이 몰려다니면서 이야기하고,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 그 때의 고민들, 서로 상담(?)하고 의지하던 시절. 또 선생님들을 이리저리 피해 다니기도 하고. 그 와중에 커플들은 커플끼리 다니고, 그리고 부러워하면서도 훼방놓으려는 나머지 사람들.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시대가 좋아져서 다 연락하고, 인터넷으로 미니홈페이지나 블로그, 메신져로 다 이야기해서 별로 궁금하진 않지만.


-뒷 이야기-

다음날.
고3 선배님들은 수능을 쳤고, 선생님들은 수능 감독을, 우리 1, 2학년 학생들은 자율 학습을 하였다.

그 다음날.
1,2학년 학생들은 단체로 강당에 올라가서 ‘교장 선생님’과 1,2,3학년 주임선생님께 굉장히 혼났다. 흐흐(혼날 만 했으니..) 나간 사람 다 일어서라고 했는데, 약 60~80%가 나간 것으로 기억한다.

며칠 후.
별똥별 쇼는 새벽 3~4시가 절정으로 예상되었던 것이, 새벽 1~2시쯤 절정이 되었다고 한다. (무엇 때문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1~2시쯤에.... OTL

(그림이 성의 없어서 죄송합니다. 그림판을 좀 더 배워야겠습니다.)

      사는이야기/옛날이야기  |  2007. 12. 15.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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